Trip/섬 속의 섬

[여행] 섬 속의 섬, 한림 비양도

웨이들 2022. 5. 9.

 

소년은 그 섬으로 갔다
내 안의 소년을 찾아서
한라산과 오름이 일제히 돌아보았다
비양봉 등대가 눈을 크게 떴다
고요 바다에 떠 있는
소녀의 눈동자를 찾는다.


"비양도와 소년 - 고광자" 중


 

여행일자 : 22. 4. 30
정보 전달이 아닌 개인적인 감상을 정리한 글입니다

 

 

 

 


 

1. 한림항에서 비양도로

 

친구가 한림으로 이사를 갔다. 한림항에 가까이 붙어있는 그 집은 창문에서 비양도가 보였다. 마침 기가 막힌 날씨의 봄의 끝자락, 할 일 없이 비양도를 보고 있었던 그 친구는 똑같이 할 일 없는 친구들을 불러 모았다. 그렇게 우리는 비양도로 떠났다.

 

날씨는 정말 기가 막혔다. 단순히 맑은 하늘 수준이 아니었다. 일기예보상으로는 '흐림'. 하지만 뭐랄까, 만약 일기장에 날씨를 적는 칸이 있었다면 '기묘하게도 한쪽만 흐림'이라 적을 날씨였다. 하지만 원래 놀러 갈 땐 구름이 조금 낀 게 더 좋고, 그 구름이 독특하다면 더 좋은 법 아니겠는가? 게다가 바다는 잔잔하고 바람도 강하지 않았다. 그야말로 섬으로 떠나기 최고의 날씨, 우리는 카메라를 들고 비양도로 가는 배에 올라탔다.

 

기묘한 날씨라 즐길 수 있는 풍경

 


 

1-1. 제주도 한림읍 비양도

 

비양도는 해안선 길이가 3.5km, 면적이 0.59㎢에 불과한 작은 섬이다. 마라도보다 조금 크고 가파도보다 조금 작은 섬으로 한 바퀴 둘러보는 데 채 1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보통 면적을 비교할 때 기준으로 쓰는 '윤중로 제방 안쪽의 여의도 면적'이 2.9 km²이니 비양도는 여의도 면적의 1/5 정도의 정말 작은 섬이다. 심지어 내가 살고 있는 함덕리의 면적이 10.80㎢이니, 주소도 한림읍 비양리나 비양면이 되지 못하고, 한림읍 협재리 비양도길이다.

 

언뜻 보면 작아서 아무도 못 살 것 같지만, 주소가 있는 걸 보아 알 수 있듯 비양도는 사람이 살고 있는 섬이다. 섬에는 뭔가 출퇴근을 할 것 같은 민박집과 카페들도 있었지만, 밭일하고 물질하는 정말 마을 사람들로 보이는 분들도 있었다. 게다가 비록 학생이 없어 지금은 휴교했지만 어엿한 초등학교인 '한림초등학교 비양분교'도 있었다.

 

2022년 3월 1일부터 2023년 2월 28일까지 휴교한다는 안내문이 붙어있다. 내년에는 학생이 들어오는걸까?

 

제주도에는 여러 부속섬들이 있다. 그중 사람이 사는 유인도는 8개이고, 사람이 살지 않는 무인도는 71개이다. 무인도야 바다에 떠있는 작은 돌도 섬이라치자면 섬이니 어디까지 섬이라 부르느냐에 따라 그 개수가 조금씩 차이 나긴 하지만, 유인도는 비양도를 포함하여 우도, 마라도, 가파도, 상추자도, 하추자도, 추포도, 횡간도로 딱 8개이다. 그중 상추자도·하추자도·추포도·횡간도는 '추자면'에 속해있는데, 하나로 묶어 '추자도'라고 부르기도 한다. 추자도는 추자면, 우도는 우도면, 가파도와 마라도는 대정읍의 가파리이니, 행정구역 상 한림읍 협재리인 비양도는 제주도에 있는 유인도들 중 조금 특별한 곳일지도 모르겠다는 허튼 생각도 주소를 보며 한 번 해봤다.

 


 

1-2. 한림항에서 비양도로

 

섬인 만큼 비양도로 가기 위해서는 한림항에서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한다. 요즘은 다리로 연결되어 있는 섬들도 많은데, 뭔가 배를 타고 들어가니 더욱 '섬'에 가는 기분이 들었다. 물론 그렇게 대단한 항해는 아니다. 친구 집 창문에서도 커다랗게 보일 정도로 비양도는 한림항과 매우 가까운데, 한림항에서 2.8km, 배로 15분만 들어가면 되기 때문이다.

 

그래도 나름 항해이긴 해서 인적사항도 적고, 표도 끊고, 신분증도 보여주어야 했다. 독특한 건 표를 끊을 때부터 왕복표로 끊는다는 점이다. 그래서 들어갈 때부터 언제 비양도를 나올지 결정하고 들어가야 했다. 혹시 배를 놓치면 어떡하나 싶긴 한데... 비양도에 들어가서 안 거지만 비양도 안에는 매표소조차 없으니, 저 연락처로 전화해서 사정사정해야지 뭐... 어쨌든 우리는 절대 배 시간은 놓치지 않아야지 하는 강박과 함께, 도민 할인 1,000원 받아 8,000원에 배 표를 구매했다.

 

운항시간표, 승객준수사항, 운임요금, 연락처 등 아주 중요한 정보가 담긴 사진. 사실 알고보니 우리는 천년호를 탔기 때문에 위의 비양도호의 정보는 하나도 필요없긴 했다.

 

배는 운항하고 있지 않을 때 한림항에 정박해 있었기에 일찍 탑승할 수 있었다. 왕복표여서 그런지 비양도로 들어가는 배에 탑승할 때는 표나 신분증 검사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 대신 돌아올 때 놓치지 말고 똑같은 배를 타라는 주의를 한 번 들었다.

 

배에 일찍 올라탄 우리는 2층 좋은 자리를 잡고 출발시간을 기다렸다. 출발시간에 가까워지자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는데, 거의 마지막에는 다급하게 매표하고 뛰어오는 사람들도 많았다. 심지어 선장님은 '무슨무슨 옷 입은 남자분, 빨리 뛰어오세요!'라고 방송하기까지 했다. 딱히 할 일도 없는 터라 2층에 탄 사람들은 그 현장감 있는 모습을 지켜보았는데...... 다음에도 난 빨리 와서 구경거리가 되지 말아야지 하고 다짐했다.

 

아무리 그래도 화장실은 불만 없이 다들 기다려줬다. 그리 빡빡하진 않았다. 비양도 안에도 공용화장실은 있었는데, 같이 간 친구의 후기에 따르면 그리 추천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니 일찍 와서 한림항에서 볼일 다 보고 들어가는 게 최고이고, 만약 아슬아슬할 것 같으면 배에 탑승하고 미리 화장실 얼른 갔다 오겠다고 말한 뒤 뛰어갔다 오는 게... 아마 구경거리는 되겠지만....

 

우리가 탄 2층짜리 배다. 배 이름은 천년호

 


 

1-3. 배 위에서 보는 풍경

 

1층은 실내로 편안하게 앉아갈 수 있는 의자가 있었고, 2층은 태양만 가린 채 탁 틔여 있는 곳이었다. 우리는 2층 뱃머리 쪽에 자리를 잡았는데, 나중에 안 거지만 최고의 사진 스팟은 1층 배꼬리 쪽이었다. 물론 여행을 가는 입장에서 비양도가 점점 가까워지는 것을 보는 건 매력적이긴 하지만, 뭐랄까 뱃머리 쪽은 다이나믹하지 않아서 그저 카메라 줌을 당기는 느낌이랄까? 대신 배꼬리 쪽은 물살을 가르는 것도 눈에 보이고, 실제로 물이 조금 튀기도 하니, 진짜 배를 타고 움직이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일찍오면 사람이 아무도 없는 이런 사진을 찍을 수 있다

 

배는 멀미가 심한 나도 아무런 매스꺼움을 느끼지 않을 정도로 부드럽게 움직였다. 파도가 높은 날에는 멀미가 나기도 한다던데 확실히 날 하나만큼은 기가 막히게 잡은 것 같았다. 다들 사진 찍고 수다 떨면서 편하게 비양도에 도착했다. 아, 참고로 갈매기 밥 새우깡은 배에서 판매하고 있었는데, 아무도 사지 않았는지 아니면 날이 그런 건지 갈매기는 한 마리도 보지 못했다.

 


 

2. 비양오름길 탐방

 

처음 비양도에 도착했을 때 보인 건  우리가 내리면 이 배를 타고 그대로 한림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천년호를 기다리는 또 다른 사람들이었다. 뭔가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는 기분이었는데, 아마 먼저 내리고 나중에 타는 멋진 시민의식이 묘하게 익숙해서 그런 듯했다.  

 

어쨌든 우리가 탔던 배를 한림으로 돌려보내고 나니, 그 다음 귀로 들어온 것은 비양도 해설사님의 목소리였다. 해설사님은 사람들이 배에서 내리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해설을 시작했는데, 주요 내용은 비양도에 대한 간단한 소개와 주요 여행코스에 대한 안내였다. 그래서 미리 계획을 짜고 비양도에 온 사람들이야 먼저 목적지를 향해 뿔뿔이 흩어졌지만, 솔직히 집 앞에 있다는 이유로 비양도에 방문한 우리는 제대로 된 비양도 구경을 위해 해설사분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해설이 다 끝나고 나서 찍은 사진, 구름이 낀 쪽으로 찍어서 날씨가 굉장히 안좋아보인다.

 

해설사님은 여행코스는 안내지도만 가지고 얘기하는 게 아니라, 눈앞에 보이는 건물들을 짚어주면서 여행코스와 화장실 같은 부대시설도 하나하나 알려주었다. 그리고 우리는 해설사님의 추천대로 비양봉을 향해 출발했다.

 


 

2-1. 비양봉을 향하

 

비양봉으로 가는 올레길

 

비양도를 소개하는 팻말에서 뒤로 돌아 조금만 움직이면 나무로 된 '비양봉산책로'라는 안내표지판을 볼 수 있었다. 뭔가 공원에서 봤음직한 안내표지판이라 그 길을 따라가면 제대로 정비되어있는 산책로가 나올 줄 알았는데, 실제로는 그냥 마을 시골길이 나왔다. 심지어 맨 처음 맞이한 길은 너무 개인집으로 가는 올레길 같아서 의심했을 정도였고, 그 뒤로도 중간중간 길이 정비되지 못하고 끊긴 것 같은 곳들이 있어 조금 당황스럽긴 했지만, 어쨌든 갈 수 있는 곳이 딱히 있지 않은 직선코스였기에 쭉 길을 따라 비양봉으로 향했다. 

 

대신 길 자체는 아주 예뻤다. 초반에는 정말 시골 올레길이었다. 낮은 담 뒤에 알록달록한 옛날지붕을 가진 집들이 줄지어 서 있었고,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와 담장을 뛰어넘으며 놀고 있는 길고양이도 만날 수 있었다. 집들이 있는 곳을 조금 지나자 뭔지 모를 작물들이 잔뜩 관리되고 있는 밭들도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올레길을 지나 본격적으로 위로 올라가자 푸른 바다와 함께 노란 유채꽃과 보랏빛 갯무꽃이 어울린 산책로가 나타났다. 아직 공사 중인지 포크레인 머리가 덩그러니 놓여 있기도 했는데, 마치 일부러 세팅해놓은 오브제처럼 뭔가 오묘하게 잘 어울리기도 했다. 

 

풍차, 바다, 갯무꽃과 유채꽃, 그리고 포크레인

 


 

2-2. 비양봉 정상으로

 

비양봉을 높이가 114m이고, 비양봉산책로 끝에서 5km 정도 걸어가면 도착하기 때문에 그리 어려운 오름은 아니다. 다만 길 정비가 아직 진행 중인 걸로 보이고, 중간에 계단 옆 난간 손잡이가 있어야만 할 것 같은데 없는 길도 있어서, 마냥 가벼운 차림으로 오르기엔 주의해야 할 오름이기도하다.

 

중간지점에서 서쪽지역은 막혀있어 비양봉등대쪽으로만 가야한다

 

또 주의해야 하는 점이 하나 있는데, 그건 인간이 아닌 생명체들이 굉장히 많다는 점이다. 날아다니는 날벌레는 물론이고, 나무들 사이에 주렁주렁 매달려있는 애벌레들, 달팽이, 도마뱀, 사마귀 등 집중해서 찾지 않았는데 만난 생명체들만 해도 이미 어마어마했다. 그래서 기왕이면 긴바지에 운동화, 머리에는 모자를 써서 오름을 올라가는 것을 추천한다. 



대신 풍경만큼은 그 정도 주의사항을 충분히 감수할 수 있을 정도로 기가 막혔다. 솔직히 나무로 둘러싸인 초반 갈림길까지는 특별히 감흥이 없었는데, 갈림길을 지나자 펼쳐진 전경들은 가슴을 탁 트이게 만들었다. 그거 조금 올라왔다고 바다가 내려다 보였는데, 한림항이 잘 보이는 쪽으로 돌고 있었는지 파란 하늘과 파란 바다, 그리고 파란 제주도의 모습을 한눈에 담을 수 있었다. 특히 '전망대'는 정말 전망을 보기에 훌륭했는데, 바로 앞 대나무길과 함께 어우러져 뭔가 이국적인 느낌까지 느껴졌다.

 

한림항이 내려다보이는 전망대


전망대에서 조금 더 위로 올라온다면 바로 대나무숲길로 들어선다. 제주도에 오면 다들 한 번씩은 사진을 찍는다는 그런 핫플레이스의 분위기가 났는데, 아무래도 비양도 안에 있는 산이라 사람이 별로 없어서 맘 편히 사진 찍고 떠들며 놀 수 있는 게 장점이었다.

 

그러나 대나무들은 많이 보였는데, 비양도의 나름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비양나무는 찾아보지 못했다. 우리나라에선 비양도에서만 자생하는 비양나무는 4~5월에 갈색 꽃이 피는 1~2m의 낮은 관목 나무인데, 멸종위기로 지정된 특별한 나무다. 비양봉 여기저기 심어져 있다고 하는데, 나는 하나도 알아보지 못했다. 나무에 대해 잘 모르는 것도 있지만, 비양나무 군락지가 갈림길에서 전망대 쪽 길이 아리나 반대쪽, 그러니까 서쪽길이었는데, 출입이 막혀있기 때문에 군락지에 들어가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아마 비양봉을 보호하기 위해서 그런 것 같은데, 그래서 더 미련 없이 그저 푸른 바다와 높은 대나무를 즐기기로 했다. 

 

대나무숲을 지나면 곧바로 비양봉등대가 보이는 꽃길이 나왔다. 그리고 그 꽃길을 지나 마지막 오르막길을 올라오면 드디어 정상 비양봉등대에 도착이다. 비양봉에 올라온 몇 없는 사람들은 다들 비양봉등대를 그늘 삼아 바닥에 주저앉아있었는데, 그래서 우리도 넓지 않은 정상을 한 바퀴 둘러보고 잠시 쉬었다 내려갔다. 

 

마침 비행기가 날기에 사진을 찍었다. 등대 옆에 있던 3명의 사람은 포토샵이 지워줬다.

 

서쪽길로 빙 둘러서 갈 수 있을 거라 기대했는데, 아쉽게도 서쪽길은 출입이 막혀있어서 올랐던 길로 내려와야 했다. 거꾸로 내려오는 길이라 조금 감흥이 떨어지긴 했지만, 그래도 힘들게 올라가느라 제대로 즐기지 못한 풍경들을 조금씩 더 즐기며 천천해 내려왔다. 

 


 

3. 화산섬 비양도 둘러보기

 

3-1. 화산탄과 코끼리바위

 

비양봉에서 내려온 우리는 항구로 돌아가지 않고 바로 서쪽 해안가로 길을 따라 걸어갔다. 비양오름길 탐방로 지도에는 왠지 서쪽이 끊겨있는 것 같이 그려져 있어서 조마조마했지만, 다행히도 길 따라 내려가다 보니 바로 서쪽 해안을 만났다. 우리는 서쪽해안길을 따라 쭉 북쪽으로 올라가 비양도를 한 바퀴 돌았는데, 그래서 가장 먼저 만난 주요 스팟은 코끼리바위였다. 

 

코끼리바위의 오른쪽이 코

 

처음에는 먼 곳에서, 그것도 반대방향에서 보는 거라 '이게 왜 코끼리 바위지?' 싶었다. 그러나 점점 다가가면 보이는 무언가 코끼리 같은 모습에 '아! 이래서 코끼리바위구나'하고 납득하고야 말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게 썰물이라 볼 수 있는 광경이었다고 한다. 물이 들어오면 잠겨있어 코끼리바위를 제대로 보지 못하니 어쩌면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지나칠 수도 있었는데 운도 참 좋았다. 

 

코끼리바위의 정체는 사실 지금은 사라진 비양봉의 또 다른 분화구가 파도에 침식되어 코끼리 모양으로 남은 바위다. 지질 분석에 따르면 비양도는 최소 2개의 독립적인 위치에서 거의 연속적으로 진행된 화산활동을 통해 만들어진 섬이다. 그것도 아주 오래전 해수면이 낮았을 때 육상 환경에서 분화했는데, 해수면 상승으로 인해 지금의 섬이 되었다고 한다. 이 연구에 따르면 2곳의 분화구 중 더 먼저 분화한 곳은 지금의 비양봉이 아니라 비양봉의 서쪽~서북쪽 해상, 그러니까 코끼리바위가 있는 쪽이었을 거라 한다. 그래서 서쪽~서북쪽 해상은 지금의 비양봉과는 관계없는 곳에서 분출한 대형 화산탄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사실 화산활동이니 분화구니 잘 몰라도, 그냥 길 자체가 자전거를 타고 가도 좋고 걸어가도 좋은 해안산책로다

 


 

3-2. 애기업은 호니토

 

코끼리바위를 지나 해안선을 따라 쭉 북쪽으로 올라가다 보면 이상한 돌들을 잔뜩 만나게 된다. 암석 소공원이라고 하는데, 그냥 돌멩이들을 쭉 깔아놓은 것 같아 크게 관심 두지 않고 걸어갔다. 그러나 암석 소공원이 끝나면 코끼리바위 다음으로 진짜 눈에 띄는 암석을 발견하게 되는데, 그게 바로 애기업은돌이다.

 

애기 업은 돌이라는 이름이 붙은 호니토

 

애기업은돌은 화산지질학적으로는 호니토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호니토란 'little oven'을 뜻하는 스페인어에서 유래된 용어로, 용암 내의 가스가 분출되는 과정에서 솟구치며 형성된 굴뚝 모양의 돌을 말한다. 애기업은돌 주변에는 이런 호니토들을 더 발견할 수 있었는데, 몸체가 드러나 있고 파괴되지 않은 호니토는 희귀해 지질 지형 관련 천연기념물로 등록될 정도다. 

 


 

3-3. 화산성 염습지인 펄랑못

 

애기업은돌을 지나 동쪽 해안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오면 만날 수 있는 게 펄렁못 습지다. 펄랑못 습지는 용암이 만든 대지 위에 생긴 화산성 염습지이다. 염습지란 바닷물이 드나들어 염분 변화가 큰 습지를 뜻하는데, 밀물 때에는 바닷물이 들어와 짠물호수가 되고 썰물 때에는 바닷물이 빠져 민물호수가 되는 곳을 말한다. 이에 펄랑못은 독특한 식생이 자란다고 하는데... 아쉽지만 이미 녹초가 되어버린 우리는 제대로 된 구경은커녕 얼른 항에 도착하기 위해 터벅터벅 걸어갈 따름이었다. 

 

펄못에서 마을쪽을 찍은 사진

 


 

4. 비양도를 떠나며

 

체력이 완전히 바닥난 우리는 비양도 항에서 천년호를 기다렸다. 2시간은 분명 타이트해 보이지만, 음식점이나 카페를 들리지 않고 비양봉에 갔다가 걸어서 비양도를 도는 코스를 짜는 사람에게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그보다 더 길게는 체력이 바닥나서 하질 못하니 말이다. 그러니 4시간을 생각한다면 꼭 중간에 쉴 곳을 정해두는 걸 추천한다. 

 


 

4-1. 천년의 전설과 천년호

 

그나저나 이 비양도에 들어오는 배가 '천년호'라는 이름이 붙은 것도 다 이유가 있었다. 비양도는 1002년 경에 화산활동이 기록된,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화산활동 기록을 갖고 있는 섬이기 때문이다. 

 

신증 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제3권에는 "서기 1002년 6월 산이 바다 한가운데서 솟아 나왔는데 산꼭대기에 네 개의 구멍이 뚫리어 붉은 물이 솟다가 닷새만에 그쳤으며 그 물이 엉키어 모두 기왓돌이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위의 지질연구를 통해 밝혀진 것처럼 비양도는 해수면이 지금보다 훨씬 낮았을 때 화산 폭발로 만들어진 섬인지라, 지금은 1002년 분화 기록의 대상인 화산체가 비양도가 아니라는 의견도 있다. 심지어 비양도 남서쪽 해안단에서 신석기시대 토기가 감정되었으니, 1002년 이전에도 비양도가 존재했던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뭔가 배 이름은 진실보다 전설에 따라 짓는 게 더 근사해 보이기도 하고, 아무래도 오랫동안 비양도가 1002년 화산 분화에 의해 형성된 섬으로 추정했으니 배 이름을 '천년호'라고 지었던 듯하다. 

 

천년호가 비양도로 들어오고 있다

 


 

4-2. 안녕, 비양도!

 

우리는 비양도에 도착했을 때 봤던 광경처럼 줄을 서서 비양도로 들어오는 천년호를 기다렸다. 오늘의 마지막 배라 사람들이 아예 없을 줄 알았는데, 그래도 민박 손님들이 있긴 있는지 생각보다 사람이 많았다. 게다가 주민들에게 온 것 같은 택배와 우편들도 있었는데, 생각해보니 요즘 같은 시대에 꼭 필요한 서비스구나 싶었다. 

 

비양도를 떠나는 천년호

 

이번엔 다들 지쳐서 그런지 우리도 뿔뿔이 흩어져 누군가는 쉬러 1층으로 들어가고, 누군가는 2층에서 한림항을 지켜봤다. 그리고 나는 아쉬움을 남기지 않기 위해 1층 배꼬리에 자리를 잡아 사진을 찍었다. 

 

배의 1층에서 쉬는 것도 나쁘지 않다

 

뭔가 2시간짜리 여행인 주제에, 뭔가 어마어마한 글을 써버린 것 같아 조금 민망하다. 하지만 그만큼 날씨가 도와주고 조수가 도와줬던 날인 것도 사실이고, 뭔가 준비하고 가면 눈에 보이는 것이 많은 섬이라 할 말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자면 비양도 여행이 이 날 모임의 전부는 또 아니었다. 우리는 한림에서 저녁도 먹고 보드게임도 하고 잠도 자고 카페도 갔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이 2시간이 이번 여행에 핵심인 건, 역시 날씨가 좋았기 때문이려나?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