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이 올 걸 아는데
난 핸드폰을 놓지 못해
잠은 올 생각이 없대 yeah
다시 Instagram, Instagram 하네
잘 난 사람 많고 많지 oh
누군 어디를 놀러 갔다지
좋아요는 안 눌렀어
나만 이런 것 같아서
저기 Instagram, Instagram 속엔
"Instagram - 딘" 중
여행일자 : 22. 5. 14
정보 전달이 아닌 개인적인 감상을 정리한 글입니다
1. 랜디스도넛
1-1. 아이언맨 도넛
빵은 좋아하지만 도넛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가운데가 뚫려있는 동그란 빵'이라고 하면 도넛보다 베이글이 더 먼저 떠오르고, '도넛'이라고 하면 설탕 묻은 꽈배기가 먼저 떠오른다. 아마 지독히 한국적인 빵맛이 길들여졌기 때문일 텐데... 그러니 내게 랜디스도넛 방문은 굉장히 특별한 일이다.
내가 1953년 캘리포니아에서 시작된 랜디스도넛을 알게 된 건 <아이언맨2>때문이다. 미국과 자본주의를 상징하는 '유쾌한' 히어로 아이언맨이, 역시 미국과 자본주의를 상징하는 도넛을 '유쾌하게' 먹고 있는, 놀랄 정도로 임팩트 있는 장면이 나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건 단순히 나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랜디스도넛의 첫 해외 매장인 애월점이 생겼던 2019년, 이미 <아이언맨2>가 나온 지 10년이 다 되가고 있을땐데도 불구하고 랜디스도넛은 '아이언맨 도넛'이라는 이름으로 불렸으니 말이다.
그래서 내가 랜디스도넛 애월점을 방문하게 된 것도 다 <아이언맨2> 때문이다. 랜디스도넛 애월점이 오픈한 후 무려 3년이 더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마블을 굉장히 좋아하는 친구가 있다는 이유로 손에 붙잡혀 여기에 방문했으니 말이다.
그래서일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동그란 도넛 모양의 구조물이었다. 사실 <아이언맨2>에 관심이 없는 사람도 유독 눈에 띄는 외형 때문에 이 구조물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을 것이다. 더군다나 애월 해변엔 높게 솟아오른 오름도 없고 건물들도 대체로 낮은 편이라, 이 독특한 구조물은 정말 어디에서나 보인다. 그래서 이 도넛 모양의 구조물은 어디서나 랜디스도넛을 인지하게 만드는 간판 역할도 하고, 멀리서도 약속 장소를 찾을 수 있는 이정표 역할도 한다.
하지만 우리는 아이언맨처럼 하늘을 나는 능력이 없기 때문에 이 구조물에 비스듬히 누워서 도넛을 먹을 '인증샷'을 찍을 수 없다. 그래서 그런가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주차장에도 도넛 모양의 구조물을 하나 더 설치해 놓았다. 아쉽게도 크기는 훨씬 작아 아이언맨처럼 도넛 안으로 들어갈 순 없지만, 바로 옆에 설 수도 있었고 손으로 만질 수도 있었기에 포토존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었다.
1-2. 줄 서서 도넛 구매하기
하지만 랜디스도넛에 도착하고 나자 내게 가장 강렬하게 다가온 것은 움직이지 않는 구조물이 아니라, 아주 느리게 움직이는 '긴 줄'이었다. 사실 식당이 아니라서 요리를 하는 데에 긴 시간이 걸리거나, 앉아서 먹을 곳이 날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 그러니까 주문하면 물건을 받고 나가는 회전율이 매우 빠른 매장인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30분을 넘게 기다려야 했고, 심지어 줄이 너무 길어서 처음에는 매장 밖 실외에서부터 기다려야 했다. 심지어 오후 3-4시쯤 되면 물량이 없어 문을 닫기도 한다고 하니... 정말 도넛 하나 먹는 게 이렇게 어려운 일이어야 하는 걸까?
줄이 조금씩 줄어들어 드디어 실내에 들어선다면 우리를 맞이하는 것은 텅 빈 굿즈샵이었다. 나름 상당히 넓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이 굿즈샵은 안타깝게도 정말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다. 만약 저기 있는 굿즈들이 마블 굿즈거나 아이언맨 굿즈라면 이렇게 무관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뭐랄까... 지나치게 친근해 보이는 아저씨가 그려진 티셔츠와 우산은... 글쎄 그다지 사고 싶진 않았다. 슬프지만 캐릭터의 세계는 매우 냉정하다.
별 거 없는 굿즈샵에서 눈길을 거둔 우리가 마주한 것은 곳곳에 설치된 메뉴판들이었다. 긴 시간을 기다리며 마땅히 할 일도 없고, 우리 팀 뒤로도 사람들이 점점 많아져 직원 앞에 도착하자마자 원하는 도넛을 고르고 빨리 떠나 줘야만 할 것 같았기에, 우리는 미리 먹을 도넛을 결정했다. 여기에는 곳곳에 설치된 메뉴판보다는 인터넷 검색이 더 도움이 되었는데, 우리는 글레이즈 도넛 2개랑, 라즈베리 필링 도넛, 가나슈 도넛, 누텔라 도넛, 메이플 크림 롱존 총 6개를 선택했다.
다 먹고 나서 하는 얘기지만, 만약 다시 돌아가 도넛을 고르라고 한다면 난 그냥 별 기대 없이 화려해 보이는 걸 선택할 것 같다. 나처럼 도넛에 정말 관심이 없는 사람에게 진짜 미국 도넛은, 그냥 지독하게 단 촉촉한 빵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한국빵에 완전히 길들여진 내겐... 뭐랄까... 뭘 먹어도 그리 뒤집어질 정도로 맛있지 않달까? 그러니 어차피 인증샷찍고 먹었다는 걸 기념하러 온 것일 테니 사진을 남기는 걸 최우선으로 삼아야 한다. 그러니 최대한 화려하고 독특한 빵을 고르는 것으로!
30분이 넘는 긴 기다림 끝에 쇼케이스 앞에 선 순간, 우리는 아주 다급한 목소리로 '박스 크기'를 물어보는 직원을 마주했다. 거기에는 천천히 도넛을 쇼핑할 여유와 갑작스러운 질문에 당황할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6개를 한꺼번에 살 계획이었던 우리는 빠르게 박스크기를 얘기한 후 도넛 하나씩 부르기 시작! 그리고 직원분은 하나씩 주문할 때마다 한 번 더 큰 목소리로 확인하면서 도넛들이 깔려있는 트레이에서 하나씩 꺼내 주었다. 뭔가 다급한 베스킨라빈스 같았달까?
1-3. 커피는... 뷰는 좋아요!
먹을 곳도 마땅히 없었고, 코로나 때문에 산책하면서 도넛을 먹는 것도 그리 편하지 않을 것 같아서, 우리는 애초에 도넛을 사고 2층과 3층에 갈 예정이었다. 그런데 도넛을 사는 줄이 워낙 길어서 뭔가 자리가 있긴 있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그런데 이게 웬걸? 의외로 2층은 한산했고, 한림이 내려다보이는 3층은 창가 자리에만 사람들이 가득 차있을 뿐 욕심만 버리면 충분히 앉을 곳들이 많았다.
아무래도 도넛만으로도 돈이 많이 드는데, 2층과 3층에서 먹기 위해선 커피를 '또' 사야 해서 그런 건가 싶었지만... 그렇다고 커피값이 그렇게 비싼 건 또 아니었다. 아메리카노가 4,800원이고, 스무디나 에이드가 6천 원 대이니 기가 막힌 애월의 물가를 생각하면 괜찮지 않은가? 물론 누가 커피가 맛있냐고 묻는다면 그리 긍정적으로 얘기할 순 없겠지만... 그냥 엄청 단 도넛이랑 같이 먹을 걸 생각하면야 못 먹을 맛은 아니었으니... 게다가 회전율이 빨라야 하는 카페치고는 의자는 상당히 편했고, 중간중간 사진을 찍을 스팟들도 많았다. 특히 3층 창가 자리는 애월 바닷가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는데, 그 순간 더 이상 도넛과 커피의 맛은 중요하지 않아 졌다.
대신 트레이는 조금 아쉬웠다. 키치한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서 반짝거리는 유광재질의 플라스틱을 사용한 것 까진 좋았는데, 아무래도 유리컵과 사기그릇을 나르기에는 너무 미끄러웠다. 물론 만약 다시 랜디스도넛 애월점에 가게 된다면 그때에도 난 3층에서 도넛에 커피를 같이 먹을 것 같긴 한데... 흠... 일단 애초에 맛 빼고 이야기해야 한다는 점에서 마블팬이 없는 이상 애초에 가지를 않을 것 같지만... ㅎㅎ... 맛이 없다기보단 뭐랄까... ㅎㅎ 애초에 나는 이걸 맛있게 먹을 수 없는 사람이었달까?
1-4. 한담해안산책로로 마무리
랜디스도넛 애월점은 결코 도넛을 다 먹었다고 마무리지을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애초에 애월까지 왔는데 한담해안산책로를 걷지 않는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너무 많이 갔던 곳이라 그다지 가고 싶지는 않았지만, 친구들이 한 번도 가보지 않았다는 얘기를 들은 순간 이건 피할 수 없는 선택지임을 깨달았다. 뭐, 어느 정도는 잔뜩 단 걸 먹은 슈가하이상태여서 그런 걸 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우리는 애월을 찾은 다른 많은 관광객들처럼 한담해안산책로를 걸었다. 날이 좋아서 그런지 유독 사람이 많은 기분이었는데, 초반에는 말만 산책로지 지하철 환승정류장 같은 기분이 들어서 잘못 선택한 게 아닐까 후회가 되기도 하였다. 다행히 곽지해수욕장 쪽으로 조금만 걸어가니 상대적으로 한산해지긴 했는데... 본격적인 여름이 되면 여기를 여유롭게 걸을 수 있을까 싶긴 했다.
2. 금산공원
2-1. 숨겨져 있는 보석 같은 난대림 숲길
우리의 다음 코스는 금산공원이었다. 한담해안산책로를 따라 쭉 걸었지만, 여전히 도넛으로 가득 찬 배를 꺼뜨릴 '걸을 곳'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금산공원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는 난대림지대다. 제주시 서부지역 평지에 남아있는 보기 드문 이 상록수림은 다양한 식물들 200여 종이 숲을 이루고 있을 뿐 아니라, 원형림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기에 매우 가치가 높은 곳이기도 하다.
다만 예상과는 조금 다른 곳이었다. 이름이 금산'공원'이라 어느 정도 잔디 위 밴치들이 놓여있는 도심지 공원을 생각했었는데, 실제로는 완전한 숲길이나 산책로였다. 시야는 기본적으로 나무들에 갇혀있었고, 끊임없이 걸어가야 무언가를 경험할 수 있게끔 구성되어있었다. 대신 빽빽한 나무에서 쏟아지는 피톤치트와 그런 나무들을 피해 내리쬐는 햇살을 즐길 수 있는 곳이었는데, 그러니 곶자왈이나 난대림지대라고 생각하고 가는 편이 좋을 것 같다.
게다가 천연기념물이니 난대림지대니 하는 설명문 때문에 꽤 큰 공원일 거라 생각했는데, 사실은 30분이면 공원 모두를 둘러볼 수 있을 정도로 작은 곳이었다. 예로부터 양반들이 풍류를 즐겼던 곳이라 유교식 마을제의가 이루어지던 포제단을 가운데에 두고 숲길들이 여기저기 뻗어있는 식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어느 길로 들어가도 곧 다시 다른 길과 만날 정도로 작은 곳이라 걱정하지 말고 발길 가는 곳으로 흘러가듯 걸어가면 되는 곳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런 예상과 다른 점이 내겐 더 매력적이었다. 온전히 우리밖에 없는 푸른빛의 조용하고 짧은 산책로를 애월에서 느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상당히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차가 없으면 접근하기도 조금 어렵고, 주변에 카페나 맛집이 있는 것도 아니라서 그런지 핫플레이스로 가득 찬 애월에서도 유독 조용한 곳이라 느껴졌다. 당장 좀 전에 갔었던 한담해안산책로는 사람들에게 밀려 억지로 나아가는 기분이었는데, 여기는 비슷한 산책로임에도 완전히 우리들만의 공간처럼 느껴졌으니 말이다.
2-2. 납읍초등학생들의 순수한 시들
발길 닿는 곳을 따라 아무렇게나 걸어가던 우리는 전혀 예상치 못한 귀여운 시들을 만났다. 금산공원 바로 옆, 학생 수 100여 명의 작은 납읍초등학교 아이들이 쓴 시화가 곳곳에 걸려있었기 때문이다. 정확한 위치는 공원에 들어가자마자 우측으로 돌면 나오는 곳이었는데, 금산공원과 가까운 학교라서 그런지 여기를 뭔가 대형 게시판처럼 사용하는 것 같았다.
일단 '시화'라는 걸 너무 오랜만에 봤다. 그래도 여기저기서 누군가의 시나 시의 한 구절들은 종종 보았는데, 시와 그림이 함께 있는 '시화'는 정말 언제 봤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거기다 반 이름도 1학년 1반, 2반이 아니라 '무궁화반', '진달래반', '민들레반'과 같이 정말 초등학교 같은 반 이름이었는데, 중고등학교도 너무 오래된 내게 초등학교 반 이름은 뭐랄까 그것만으로도 뜬금없이 감동적이었달까?
우리는 그냥 소소하게 떠들면서 스치듯 시들을 감상했다. 철학적으로 고민하면서 볼 작품도 아니고, 조용하게 내면의 소리를 들으면서 감상해야 할 작품도 아니니 말이다. 대신 '옛날엔 나도 저런 시와 그림을 그렸는데...' 하면서 절로 동심에 감동하고,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를 맺으면서 몽글몽글하게 감상했다. 어쩌면 시간은 쏜살같이 빠르게 흐르고 세상은 놀랄 정도로 많이 변했지만, 어린이들은 무언가를 좋아하고 신나 하며, 학교에서는 굳이 굳이 그걸 '시와 그림'을 통해서 표현하게 만든다는 점처럼, 뭐랄까 여전히 그대로 인 것도 있는 것 같달까? 그러고 보면 원형림이 그대로 보존되어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금산공원에 퍽 잘 어울리는 오브제들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3. 더럭초등학교
3-1. 더럭분교에서 더럭초등학교로
감동은 납읍초등학교 학생들에게서 받았지만, 금산공원을 나와 발길이 향한 곳은 우습게도 조금 더 옆에 있는 더럭초등학교였다. 더럭분교로 더 익숙한 이 학교는 2012년 세계적인 색채 디자이너인 장 필립 랑클로가 디자인하면서 유명해진 학교다. 장 필립 랑클로는 프랑스의 유명 컬러리스트로서 아틀리에 3D 쿨레르의 설립자로 다양한 건물들에 매력적인 색채를 입혔다. 우리나라에서는 힐스테이트 아파트 색체 디자인과 더럭초등학교의 디자인으로 유명하다.
Jean-Philippe Lenclos - Wikipedia
Jean-Philippe LenclosBorn(1938-03-05)March 5, 1938OccupationDesigner-ColoristNationalityFrench Jean-Philippe Lenclos (born March 5, 1938) is a French designer-colorist and founder of Atelier 3D Couleur, a studio based in Paris, France. He has been referred
en.wikipedia.org
생각해보면 대체 왜 우리 주변에 초등학교들은 그리도 칙칙한 색상이었을까 싶다. 알록달록한 무지갯빛 학교 외관은 밖에서도 학교가 더 눈에 쉽게 들어오고, 아이들에게도 왠지 좋은 영향을 미칠 것 같은데 말이다. 그래서인지 2012년 더럭분교는 '분교'일 정도로 아주 작은 학교였지만, 이제는 학생수가 점점 늘어나 2018년에는 더럭초등학교로 승격되기까지 했다. 여기에는 제주도와 애월의 성장이 큰 역할을 했겠지만, 어쩌면 매력적인 학교의 색채도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3-2. 관광지가 아니라 학교니까!
하지만 모든 일에는 명과 암이 있듯이, 유명해지면 그만큼 단점도 있는 법이다. 슬프게도 학교 앞에는 안내문들이 상당히 많았다. VISIT JEJU에서 잘 정리해준 숙지사항은 다음과 같다.
<더럭 분교 이용안내 숙지사항>
1.개방 시간이 아닌 18:00까지는 탐방로를 이용.
2.학생들의 교육 활동에 방해되지 않게 하기.
3.학생들과 사진 찍거나 찍어 달라고 하지 않기.
4.지나친 애정 표현이나 언행 삼가하기.
5.가져온 쓰레기는 되가져가기.
뭔가 이런 것까지 주의사항으로 있어야 하나 싶어서 읽으면 읽을수록 낯부끄러운 내용들이다. 심지어 학교 앞 안내문에는 빨간 글씨로 사용 중 발생한 쓰레기는 되가져갑니다(특히 Take out 했던 일회용 커피 용기 등)이라고 적혀있어서 더더욱 그랬다. 비록 우리는 학교가 운영되지 않는 주말에다가 개방시간도 신경 써서 도착한 거지만, 그래도 학교를 구경하기 위해 온 거라 뭔가 민망함을 느꼈다. 제발 다들 훌륭한 어른까지는 아니더라도 평범한 어른이라도 되자...
그렇다고 절대 출입금지는 아니다. 대신 안내문에는 "학교는 공공시설물이지 관광지는 아닙니다. 다만, 지역사회와 함께 행복하자는 취지에서 학교를 개방하고 있습니다."와 같이 적혀있었다. 그러니 우리도 관광지가 아니라 공공시설물을 이용하는 것처럼 사용하기로 했다. 마스크도 잘 쓰고, 너무 시끄럽게 하지도 않고 말이다.
그래서 그런가 학교에는 관광객보다 어린이가 더 많아 보였다. 물론 어린이 관광객일지도 몰랐지만, 뭐랄까 인증샷보다는 놀이터를 뛰어노는 걸 더 즐긴다는 점에서 공공시설물을 제대로 활용하는 어린이 같았다. 그래서인지 우리도 마치 어린이들처럼 폴짝폴짝 뛰어다니다가 곧 학교 밖으로 나왔다. 학교에 오래 있으면 금방 질리는 것도 어린이들의 특징이니 말이다. 다만 체력만큼은 어린이들을 따라가지 못해서인지 그리 오랜 시간 폴짝폴짝 뛰지는 못했다.
4. 카페 레이지펌프
4-1. 감성 넘치는 인스타 핫플레이스
이번 애월여행의 마지막은 인싸력 넘치는 핫플레이스 <카페 레이지펌프>다. 인스타그램에 '한림카페' 검색하면 끝없이 나오는 곳으로, 역시나 마블팬의 추천으로 방문하게 되었다.
역시 인스타에서 유명한 카페라 그런지 사진을 찍을 스팟들이 곳곳에 널려있었다. 각 스팟들은 뭔가 허름한 노출 콘크리트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지만, 조명이나 색감 그리고 풍경을 다르게 만들어서 사진마다 완전히 색다른 분위기를 내고 있었다. 주요 사진스팟은 출입구 바로 옆에 보이는 녹슨 펌프 오브제, 2층과 3층에 바닷가 쪽으로 나있는 큰 창, 아예 통창으로 되어있는 별도의 건물과, 강렬한 색색의 조명이 매력적인 지하 1층.
심지어 판매하고 있는 음료들도 사진 찍기 좋은 음료들이었다. 속 안이 잘 보이는 투명한 유리잔에, 뭔가 흔하지 않은 독특한 색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음료마다 조금 다른 유리잔이라거나 음료 위에 올라간 과일이나 허브까지도 세심하게 고른 것 같아 보였는데, 이런 섬세함 때문에 아무렇게나 찍어도 그럴듯한 사진이 나왔다.
4-2. 양식장에서 카페로
그러나 레이지펌프의 진정한 매력은 여기가 양식장이었던 것을 인지하는 순간 찾아온다. 이 카페의 이름이 게으른 펌프라는 뜻의 LAZY PUMP라 지어진 것도, 바로 20년 이상 부지런히 돌아갔던 양식장의 펌프들이 이제는 바다가 보이는 곳에서 커피 향을 맡으며 휴식을 취하고 있다는 걸 나타내기 위해서다. 이처럼 이 카페의 정체를 인식한 순간, 단순히 '힙'한 유행처럼 느껴지던 노출 콘크리트나 뜬금없이 보이는 펌프 오브제들이 '진짜'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특히 그냥 오래되어 부서지고 흠집이 난 벽을 마치 미술작품처럼 프레임을 씌워 '해무, 연작'이라는 이름을 붙인 건 머리가 얼얼할 정도로 신선한 충격이었다. 명명하지 않는다면 아무 의미 없을 흠집들이 예술로 승화되었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온갖 곳에서 오브제처럼 사용되는 낡은 펌프들, 깔끔하게 새로 덧칠하지 않은 벽면, 굳이 막아두지 않은 수도관 등 양식장이었던 곳이 카페가 된 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무언가들이 마치 예술처럼 존재하는 곳이 바로 레이지펌프였다.
5. 다음은 어디?
워낙 핫플레이스가 많은 애월을 단순히 4개의 공간으로 압축시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랜디스도넛에 필적하는 카페노티드, 한담해수욕장과 곽지해수욕장 주변에 수많은 카페들과 맛집들, 아르떼미술관과 제주불빛정원 등 중산간의 매력적인 관광지들과 빼놓을 수 없는 항파두리와 구엄리-신엄리의 카페들까지 진짜 제주도에서 가장 핫한 곳이니 말이다.
그래서 애월 핫플레이스 탐방은 언제든 시즌2, 시즌3를 할 수 있다. 심지어 순식간에 또 다른 핫플레이스들이 깜짝 등장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거야말로 제주도에 살고 있는 사람이 누릴 수 있는 혜택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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