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ip/전시

[전시] 요시다 유니 ; Alchemy : 찬사를 불러일으키는 집요함

웨이들 2023. 9. 3.
디테일에 대한 집념은 곧 리얼리티에 대한 집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사진이 가지고 있는 리얼리티를 깊이 이해하기에 볼 수 있는,
여러 세세한 시점들이 이처럼 'real'하면서도'imaginary'한 세계를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닐까요.

사진작가 "마나카 히로시"의 작가 "요시다 유니"에 대한 소개글 중


 

관람 일자 : 23. 08. 18
정보 전달이 아닌 개인적인 감상을 정리한 글입니다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 유명 아트 디렉터 : 요시다 유니

 

평범한 사람인 나는 광고를 좋아하지 않는다. 광고를 얼마나 싫어하는지 집에 TV도 없고, 유튜브도 꼬박꼬박 돈을 내며 프리미엄으로 이용하고 있다. 패션 잡지는 읽어본 적도 없다. 애초에 잡지를 잘 안 읽는 것도 있지만, 그나마 읽는다면 MSV, 스캡틱 이런 것들이지, 패션을 주제로 한 잡지들은 내게 어떠한 흥미도 이끌어내지 못한다. 그런데 이런 나조차도 요시다 유니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다. 이 정도로 유명한 그녀가 서울 석파정 미술관에서 첫 해외 개인전을 연다고 하니... 가지 않을 수가 없지 않은가?

 

광고 트랜드를 소개하는 유튜버 의 요시다 유니 소개

 

사실 내가 그녀를 알고 있는 건 유튜버 <WLDO> 때문이다. 최신 광고나 마케팅 트렌드를 재미있게 소개하는 유튜버인데, 광고 친화적이지 않은, 특히 외국의 광고에 대해서는 접할 일조차 거의 없는 내게 상당히 많은 인사이트를 주는 영상들을 제작했다. 한 번은 그가 요시다 유니를 '초현실적 아날로그 디자이너'로 소개하며 아날로그-자연-여성을 키워드로 정리한 영상을 만들었는데, 너무나 잘 만들어진 위 영상은 내게 상당히 인상 깊게 남아있었다. 

 

그럼에도 솔직히 전시회를 그리 맘 편히 간 건 아니었다. 일단 가격이 성인 20,000원이라 꽤 높은 가격이기도 했고, 워낙 유명한 작가이니 줄을 서서 들어가야 한다거나 사람이 너무 많아서 불편할 거라는 흉흉한 괴담들이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애초에 작품들이 미술관 전시를 위해 만들어진 게 아니기에, 어쩌면 그냥 스마트폰이나 컴퓨터 화면으로 즐기는 게 더 작가의 의도에 어울리는 관람방법이 아닐까 싶기도 했고 말이다. 거기다 조금은 이미 <WLDO>의 영상이 그야말로 '완벽'하고, 그녀는 홈페이지나 인스타에 자기 작품을 올리는 걸 주저하지 않는데 '굳이' 미술관까지 가서 봐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들었고 말이다.

 

 

YUNI YOSHIDA

 ...

www.yuni-yoshida.com

요시다 유니 개인 홈페이지. 최근에는 인스타를 더 잘 활용하는 듯 하다(https://www.instagram.com/yuni_yoshida/)

 


 

2. 이건... 미치지 않고서야...

 

조금은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들어간 석파정 미술관은 예상과는 많이 달랐다. 우선, 우리가 관람하러 방문했던 시간이 평일 점심이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사람이 별로 없었다. 덕분에 원하는 만큼 긴 호흡을 두고 작품을 감상할 수 있었으며, 때로는 멀리서, 때로는 가까이서 원하는 구도로 실컷 구경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의외로 긴 호흡을 두고 큰 인화물로 감상하자 또 다른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매력적인 '작품'들이었다. 분명 <WLDO>의 영상이나 인스타그램을 통해 보았을 때 느꼈던 감정은 '신선하다'나 '재미있다'였는데, 실제 미술관에서 찬찬히 작품들을 뜯어보자 나는 '이건 미친 짓이야'라는 생각 말고 다른 생각은 할 수 없었다.   

 

[전시] 요시다 유니 ; Alchemy : 찬사를 불러일으키는 집요함 - 2. 이건... 미치지 않고서야...
그야말로 압도적이었던 <SO-EN "75 Years of Girs">

 


 

2-1. 하나하나 손으로 쌓아 올린

 

그녀에 작품을 보고 미쳤다는 생각이 든 이유는, 그녀의 작품들이 그야말로 지독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게 위의 사진 속 작품인 <SO-EN "75 Years of Girs">이다. 위 작품은 2011년 요시다 유니가 참여하는 패션잡지 SO-EN의 75주년을 기념해 만든 작품인데, 75년이라는 긴 시간을 나타낼 수 있도록 1,300여 권의 책을 사용했다. 그녀는 이 작품을 위해서 1,300여 권의 책에 전부 일일이 사진의 일부분을 부착했다. 그리고 전부 순서에 맞게 책장에 꽃았다. 

 

나는 이 작품에 압도되어 버렸는데, 그건 거대한 크기, 놀라울 정도의 기획력, 상상치도 못한 독창성 때문이 아니었다. 그 이전에 나는 이걸 작품으로 만들어낸 작가의 집요함에 압도당하고야 말았다. 어떻게 이걸 포기하지 않고, 그것도 이렇게나 깔끔하게 구현했을까? 분명 나라면 책 몇 권에 그림을 붙이다가 질려서 포기해 버렸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작품도 작품인데, 작가의 작업노트 전시를 봤을 때 다시 한번 '역시 이건 미친 짓이 확실해!'라고 되뇔 수밖에 없었는데, 단 몇 권 만으로 알 수 있는 저 완벽주의와 깔끔함... 나는 결코 따라 할 수 없는 작가의 집요함에 완전히 압도당해 버렸다. 

 

[전시] 요시다 유니 ; Alchemy : 찬사를 불러일으키는 집요함 - 2. 이건... 미치지 않고서야... - undefined - 2-1. 하나하나 손으로 쌓아 올린
작품 <SO-EN "75 Years of Girs">의 작업노트

 

특별히 <SO-EN "75 Years of Girs">만 대단한 의미를 지니고 있어서 공을 쏟은 것도 아니었다. 당장 위의 영상인 <WLDO> 썸네일, <LAYERED>도 마찬가지다. 어쩌면 스케일이 훨씬 작아 보일지도 모르지만, 산소에 오래 노출되면 색이 변하는 실제 과일을 사용했기 때문에 시간제한까지 있다는 걸 생각하면 과연 '몇 번을 자르고, 몇 번을 만들어봤을까?' 하는 궁금증이 절로 들지 않는가?

 

더군다나 개인적으로 스마트폰으로 봤을 때와 미술관에서 봤을 때의 차이가 가장 큰 작품들이 과일을 재료로 사용한 작품들이었다. 아무래도 도트픽셀에 꽤 익숙해져 있어서, 스마트폰 화면으로 봤을 땐 '도트픽셀처럼 유쾌하게 작품을 구상했네'정도로만 느껴졌는데, 큰 인화지로 보자 '이건 진짜 과일이네... 미쳤다...'라는 감상이 들었다. 재료로 쓰인 과일의 질감이 엄청 선명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미술관 한 켠에 요시다 유니를 소개하는 영상을 틀었는데, 거기에 잠깐 스쳐 지나간 <LAYERED> 제작과정이 가장 인상 깊었던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직접 과일을 깎는 장면이 보이자, 뭐랄까... 현실성이 확 느껴져 버리고 말았다. 

 

[전시] 요시다 유니 ; Alchemy : 찬사를 불러일으키는 집요함 - 2. 이건... 미치지 않고서야... - undefined - 2-1. 하나하나 손으로 쌓아 올린
요시다 유니 인터뷰 및 작업과정을 담은 영상에서 <LAYERED>를 만드는 부분

 


 

2-2. 현실에서 초현실을 설계하는

 

요시다 유니의 작품들에 대한 첫인상이 손으로 직접 구현해 내는 집요함에 대한 감탄이었다면, 그다음에는 현실에서 구현이 가능하도록 만든 집요한 설계에 대한 감탄이었다. 생각해 보면 저걸 직접 붙이고 쌓고, 깎아내는 것도 대단하지만, 그걸 정확하고 깔끔하게 설계하는 일도 대단한 일이지 않는가?

 

특히 그녀의 작품들은 '초현실주의'라는 수식어가 붙을 정도로 비현실적인 작품들이다. 기본적으로 <LAYERED>나, <SO-EN "75 Years of Girs">에서도 볼 수 있듯이 그녀가 소재로 삼은 것들은 지극히도 부자연스러운 것들이다. 이처럼 현실에 존재할 수 없는 걸, 아날로그라는 방식으로 남긴다는 점에서, 요시다는 필연적으로 깐깐한 '설계'를 요구받는다. 그런데 그녀는 이걸 잘 해낼 뿐 아니라 '별 거 아닌 것처럼' 해버린다.

 

예를 들어 중국의 쇼핑몰 광고로 활용했던 <2018 THE MIXC XIAMEN>는 얼핏 보면 단순하고 세련된 화보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조금만 자세히 뜯어보면, 이 작품은 그야말로 '초현실적'인 작품임을 알 수 있다. 물 표면에 편히 손을 받쳐 턱을 괴고 있는 모델이나, 아무렇지 않게 떠 있는 식기들, 심지어 컵받침 위에 편안하게 올라가 있는 찻잔과 바닥에 완전히 가라앉아있는 의자까지 곰곰이 생각해 보면 어디 하나 자연스러운 게 아무것도 없다. 

 

[전시] 요시다 유니 ; Alchemy : 찬사를 불러일으키는 집요함 - 2. 이건... 미치지 않고서야... - undefined - 2-2. 현실에서 초현실을 설계하는
<2018 THE MIXC XIAMEN>

 

아날로그를 선호하여 CG나 합성을 이용하지 않는 작가의 특징을 생각해 봤을 때, 분명 이 작품을 위해 의자는 바닥에 고정했을 것이고, 모델은 손을 덜덜 떨면서 겨우 위의 포즈를 만들었을 것이다. 어쩌면 찻잔은 컵받침과 붙어있을지도 모른다. 즉, 편안한 표정의 모델을 두어 작가는 호들갑을 떨지 않았지만, 실제로는 그 뒤에 집요한 설계와 이를 현실화시키기 위한 다분한 움직임이 들어갔을 것이다. 

 

심지어 작가는 우연에도 그다지 기대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아래의 <MICKEY MOUSE 90th ANNIVERSARY COLLECTION LAFORET HARAJUKU>도 얼핏 보면 그저 여자 모델들이 치마를 펄럭거리는 순간을 잘 포착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단순히 우연으로는 저렇게 선명한 미키와 미니가 나올 리 없다. 실제로 작가는 모델들의 치마에 와이어를 넣어 형태를 만들고, 사진에는 나오지 않는 투명한 실을 이용해 미리 미키와 미니의 모양을 고정시킨 뒤 포즈를 취하도록 만들었다고 한다.

 

[전시] 요시다 유니 ; Alchemy : 찬사를 불러일으키는 집요함 - 2. 이건... 미치지 않고서야... - undefined - 2-2. 현실에서 초현실을 설계하는
MICKEY MOUSE 90th ANNIVERSARY COLLECTION LAFORET HARAJUKU

 

그런데 위 작품들은 하나같이 '나 이 정도로 독특한 작품이야'를 얘기하기보다는 언뜻 보면 아무렇지 않게 '독특하다!'라는 느낌으로 그치게끔 만들었다. 비현실적인 상황을  아주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것처럼 묘사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간이 조금 지나서야 '어? 뭔가 이상하지 않았나?' 하는 의문이 들고, 자연시럽게 한 번 더 작품을 바라보게 만든다. 그리고 마침내 그 속에서 보이는 집요함에 압도되어 감탄한다. 아마 이것이 한 번 더 눈길을 주게 만드는 그녀만의 비법이 아닐까?

 


 

2-3. <Plaing Cards>

 

개인적으로 이번 전시에서 가장 인상 깊은 작품이 뭐냐고 묻는다면 나는 마지막인 <Playing Cards>라고 답할 것이다. 이 작품은 무려 15년 간 준비한 작품으로 지금까지 보았던 요시다 유니의 작품세계를 그야말로 총 정리하는 작품이었다.  

 

[전시] 요시다 유니 ; Alchemy : 찬사를 불러일으키는 집요함 - 2. 이건... 미치지 않고서야... - undefined - 2-3. <Plaing Cards>
신작 <Playing Cards>

 

작가는 흰 거품 속에서 뚫린 구멍으로 만든 <크로버 7>, 사람 머리를 딴 리본으로 만든 <하트 8>, 책에 꽂은 포스트잇으로 표현한 <다이아 9>, 푸른 꽃과 뿌리 그리고 흙으로 만든 <스페이드 10>등 우리에게 아주 익숙한 트럼프카드를 과일이나 천 같은 일상의 사물을 아주 비일상적으로 배치해 만들었다. 그래서 자꾸 보고 싶고, 마침내 경탄하게 되는 50여 점의 작품을, 첫 해외 개인전을 기념하여 공개했다.  

 

[전시] 요시다 유니 ; Alchemy : 찬사를 불러일으키는 집요함 - 2. 이건... 미치지 않고서야... - undefined - 2-3. <Plaing Cards>
<하트 1>은 와이어와 투명실을 이용한 천으로, <하트 4>는 손톱과 딸기로 표현했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자면, 이미 여기까지 다다를 때까지 무려 200여 점이 넘는 작품들이 그야말로 쏟아졌기에, 이미 작품 하나하나를 제대로 관찰하기엔 집중력도, 다리의 힘도 다 떨어진 상태였다. 그러니 이 상황에서 눈앞에 펼쳐진 50여 점의 작품들을 하나하나 쳐다볼 정신은 없었다. 하지만 <Playing Cards>는 50여 점의 개별적인 작품이기도 하지만, 하나의 거대한 작품이기도 했다. 같은 모양과 같은 색을 띤 트럼프카드는 그 어떠한 것도 같은 재료로 만들지 않았는데, 같으면서도 다른 많은 카드들의 배치는 그야말로 환상의 세계에 들어와 있는 듯한 느낌을 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이걸 하나하나 설계하고 실제로 실현하기 위해서 작가는 얼마나 많은 노력이 들어갔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작품을 구상하고 만들 때까지 15년이 걸렸다는 건, 분명 작가가 나이가 많지 않기에 어느 정도 수사적인 표현이라고 생각했는데, 마냥 거짓말만은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3. 디테일한 연금술사의 장인정신

 

만약 내게 요시다 유니의 전시를 한 마디로 정리해 달라 부탁한다면, 나는 '찬사를 불러일으키는 집요함'이라 얘기할 것이다. 그만큼 그녀의 작품은 압도적으로 집요했다. 어쩌면 작가의 작품은 아주 독창적이고 특이하진 않을지도 모른다. 케이크 위 블루베리로 크로버를 표현하는 건 그다지 어려운 생각이 아닐지도 모르니 말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걸 완벽하게 해냈다. 그녀는 아름다운 블루베리를 뽑았고, 케이크 위에 블루베리를 정확한 위치에 배치했으며, 그 위에 잎사귀를 아슬아슬하지만 완벽하게 꽂아 넣었다. 

 

[전시] 요시다 유니 ; Alchemy : 찬사를 불러일으키는 집요함 - 2. 이건... 미치지 않고서야... - 3. 디테일한 연금술사의 장인정신

 

그래서 그녀의 전시에 연금술을 의미하는 <Alchemy>가 붙은 것이 아닐까 싶다. 금을 만들기 위해서 1mg조차도 조심히 다루었던 연금술사처럼 그녀는 작품을 위해서 1mm도 신경 써서 배치하고 있을 것 같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 수많은 연금술 실험 속에서 수많은 화학에 대한 인사이트가 튀어나온 것처럼, 그녀 또한 집요한 아날로그 작업 속에서 많은 인사이트를 느끼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