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ip/전시

[전시] 괜찮아 (전이수 갤러리)

웨이들 2022. 4. 16.
앞으로 내가 만들어갈 이 그림들은
훗날 지금보다 조금 더 큰 내가 될 것이다.
이 그림은 지금보다 더 성숙되고 커져 있을 것이다.
난 우리집에서 꿈을 꾸고
우리집에서 그림을 그리고
우리집에서 사랑을 배운다.

"우리집 - 봄" 중



정보 전달이 아닌 개인적인 감상을 정리한 글입니다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 어린이를 존중하는 카페 겸 갤러리

 

맞은편 해수욕장쪽에서 바라본 <걸어가는 늑대들>의 외관


서우봉과 함덕해수욕장 사이에 독특한 카페가 하나 있다. 동화책에 나올 것 같은 보라색 늑대 벽화의 "걸어가는 늑대들, 전이수갤러리"이다. 그 존재는 알고 있었지만, 소심한 성격인지라 갤러리라는 이름이 붙어있는 카페에 혼자 방문하기엔 조금 부담스러워 가지 않고 있었다. 그러다 마침 친구들이 함덕으로 놀러 왔을 때, 드디어 용기 내 방문하게 되었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 속에서 주차하는 친구를 기다리는 일은 별 거 없는 일이다. 그러나 <걸어가는 늑대들>에선 많은 것을 할 수 있다. 가장 먼저 한 일은 갤러리를 둘러싸고 있는 낮은 벽과 그 위를 채운 삐뚤빼뚤한 글씨의 시들을 따라 걷는 일이었다. 순수한 내용과 정성스러운 필채로 가득 차 있는 시는 산책하듯 건물을 한 바퀴 둘러보게 만들었는데, 자연스럽게 미소가 지어졌다. 그다음 한 일은 건물들을 둘러보는 일이다. 갤러리는 카페와 아트숍, 그리고 동화책 전시장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전체적으로 민트색과 파란색, 연보라색 등 눈이 편안한 파스텔톤의 페인트로 칠해져 있었고, 건물 하나하나도 크지 않아 아기자기한 느낌이 들었다. 

 

아트숍과 그 앞의 갤러리 소개 팻말

 

마지막으로 시선이 향한 곳은 갤러리 소개 팻말이다. 어린작가라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막상 작가의 사진과 인사말을 보니 '14살의 화가이자 동화작가'라는 작가 프로필이 정확히 어떤건지 와닿았다. 게다가 인사말 바로 아래에 적혀있는 '이 공간은 아이들을 존중하는 장소입니다'라는 문구도 인상깊었다. 어느덧 '노키즈존'이 하나의 자연스러운 문화로 자리 잡고, 특히 갤러리나 카페에서는 아이들의 별 거 아닌 행동도 쉽게 방해라고 인식하는 것 시대에 그 자체로 조금은 통쾌한 팻말이자 문구였기 때문이다.

 

심지어 전시회 관람시간도 30분 간격으로 <조용한 관람>과 <어린이와 함께 관람>이 나뉘어 있었다. 우리는 <어린이와 함께 관람> 시간에 들어갔는데, 아쉽게도 관람객 중 어린이가 없어서 사실 큰 의미는 없었다. 그래도 관람하기전 이미 아이들의 분주함과 자연스러운 소음들에 대해 관대해진 상태였고, 이 마음가짐을 관람객 모두가 공유한다고 생각하자 훨씬 편안한 마음으로 친구들이랑 가벼운 이야기도 나누면서 관람할 수 있었다. 작품들의 성격이나 공간, 분위기를 생각해봤을 때 온전히 작품에만 집중한 <조용한 관람>보다는 주변과 소통하며 작품을 즐기는 <어린이와 함께 관람>을 선택하는 것은 좋은 선택이었던 듯싶다. 

 


 

2. 어른도 아이도 아닌, 청소년 작가의 '위로'

 

<위로>연작의 2번째 작품

 

외관이나 분위기를 포함하여,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이 갤러리의 가장 큰 특징은 전이수 작가의 나이이다. 작품의 소제나 주제도, 심지어는 작품과 함께 있는 글의 오타나 글씨체에서도 작가는 굳이 자신의 나이를 감추려 하지 않는다. 다만 이게 작품을 볼 때 항상 좋은 방향으로만 작용하지는 않았다. 어쨌든 '이건 14살이 그린 작품이야'라는 생각이 모든 작품에 앞서 떠올랐고, 그러다 보니 '이런 작품을 어린 나이에 만들다니 고생했겠다' 나 '와, 나이도 어린데 마음이 참 따뜻하네...'같은, 뭐랄까 기특하다는 표현을 나조차도 모르게 끊임없이 쏟아내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오히려 나는 언뜻언뜻보이는 어른스러움에 오히려 당황하곤 했다. 순수함에서 비롯되었으리라 믿었던 따뜻함이 마치 잘 교육받은 학생의 포트폴리오 같다는 느낌이 드는 순간 움찔거렸고, 자연스럽게 쏟아져 나왔으리라 생각했던 글귀들이 사전을 뒤지고 준비한 멋진 말 같다는 느낌이 드는 순간 또다시 움찔거렸다. 

 

아트숍 내부, 그림과 책을 팔고 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어린 작가'라는 프로필에서 벗어나는 게 굉장히 중요했다. 사실 생각해보면 14살이라는 나이는 그리 어린 나이도 아니다. 흔히 '중2병'이라고 불리는 사춘기와 반항기의 나이이고, 최근 연령 하향논의로 시끄러웠던 촉법소년의 현행 기준도 만 14세 미만이니 말이다. 그렇게 작가를 '어린 작가'가 아니라 '작가'로 인식하고나니 작품들이 다르게 보였다. 가족에 대한 이야기나 어린아이다운 순수한 모습과 복잡한 생각과 적당한 꾸며냄을 가진 모습이 공존하는 게 별로 어색하지 않았다. 작품에 대한 평가도 기특하다처럼 단순한 평가가 아니라 어떤 울림이 있다거나, 심지어 내 취향이 아니라는 냉철한 평가까지도 가능해졌다. 그리고 조금 우습지만 이런 생각과 감정의 변화야말로 이 갤러리가 내게 준 매력적인 경험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3. 지독하게 따뜻한 이야기

 

작품 전시장 내부, 정면의 보이는 작품은 <괜찮아1>

 

본격적으로 이번 전시회 <괜찮아>에 대해서 이야기하자면, 이 전시회는 '14살의 화가이자 동화작가'인 전이수 작가와 그의 두 살 어린 동생 전우태 작가가 함께 준비한 작품전이다. 각각의 작품들이 하나의 플롯 안에서 동일한 컨셉을 가지고 진행된 작품전이 아니라, 작품들 전반을 흐르는 분위기가 어딘가 몽글몽글하고 편안한 느낌을 주면서 큰 틀에서 '괜찮아'로 엮을 수 있는 다양한 작품들이 모여있는 전시회였다. 그래서인지 가족과 집을 소재로 한 그림들이 많았고, 희고 큰 강아지가 사람을 토닥이는 '위로' 연작처럼 작품전 제목에 딱 어울리는 그림들도 많았지만, 언뜻보면 중구난방인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래도 분위기가 하나로 엮일 수 있었던 건 대부분의 그림들이 격앙되거나 화를 내기보다는 웃고 있거나 무언가를 안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심지어 사회참여형 작품조차도 '바꿔야 한다!'거나 '이게 문제야!'와 같은 식이 아니라 '이런 세상이 좋은 세상이 아닐까...'와 같은 태도를 지니고 있었다. 거기다 각각의 작품들에는 그 작품에 연관된 글이 함께 비치되어있었는데, 작가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과, 자신의 성장이나 삶을 돌아보는 순수하고도 선한 시선들이 글에 그대로 드러났기에 더 따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품 <소중한 사람>과 <자유로워진다는 것은>

 

사실 온갖 자극적인 것에 심취하고, 고발하며 소리치는 것에 찌들어있는 사람으로서 이 글과 그림들은 송구스럽기까지 했다. <소중한 사람>의 '가까운 사람일수록 더 좋게 이쁘게 대한다면, 내 마음도 더 이뻐지고 사이도 더 좋아질 거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가 넓혀지면 사회 전체가 더 밝아지고, 이뻐질 거라는 생각을 했다.'나 <자유로워진다는 것은>의 '마음이 편안하게 자라는 것은 모두의 이해와 배려속에서 가능한 일이다. 내 마음이 가는대로 행동해도 아무도 눈살을 찌푸리지 않는 것이 진정한 자유다. 난 그런 자유를 찾아 좋은 습관이 몸에 배도록 익혀갈 것이다.'의 문구들이 그러했다. 

 

그래서인지 내 감성은 전시회 전반을 휘도는 따뜻한 감성과는 분명 안맞는 지점들도 있었다. 내 감성에 맞는 <소중한 사람> 그림은 같은 곳을 보며 미소 짓고 누워있는 게 아니라 서로 툭툭 치며 놀리는 그림이고, <자유로워진다는 것은> 그림은 혼자 다른 방향으로 날면서 소리 지르는 그림일 테니 말이다. 더군다나 나는 소중한 사람들을 조금 편하고 쉽게 대하는 것도 그리 나쁘지만은 않다고 생각하고, 더 많은 자유를 위해 걸어가다보면 눈살을 찌푸리는 사람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믿고 있기 때문에, 진한 감정적 울림이나 부딪힘이 있지는 않았다. 

 

아트숍의 모습

 

그렇다고 갤러리가 마음에 안든 건 전혀 아니었다. 오히려 완벽하게 통하는 작품이 아니라서 받을 수 있는 신선함도 있었고, 익숙한 감성이 아니라서 경험한 놀라움도 있었다. 그렇기에 내게 이곳은 지독하게 따뜻한 이야기가 있는 갤러리로 기억될 듯하다. 그림도, 주제도, 함께 있는 글도, 심지어는 운영방식까지도 모두 따뜻했으니 말이다. 심지어 관람요금 9,000원 중 4,000원은 제주미혼모센터 등에 기부되며, 나머지 5,000원도 아트샵과 카페에서 사용 가능한 쿠폰으로 바꿔준다고 하니 이건 따뜻하다 못해 뜨겁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생각해보면 매력적인 휴양지인 서우봉과 함덕해수욕장 사이에 자리잡을 수 있는 최고의 갤러리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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